오래된 부부가 멀어지는 이유에 대한 반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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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을 넘어 자유로 가는 길 최근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영상이 있다. 제목은 “오래된 부부 사이가 나빠지는 과학적인 이유.”(https://www.youtube.com/watch?v=ImicrCDH9us&t=1493s)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김범준 교수는 이중진자 법칙을 통해 왜 부부가 갈등하게 되는지를 설명한다. 영상은 흥미롭다. 초기에는 거의 같았던 두 진자의 각도가 시간이 지나며 완전히 다른 궤적으로 움직인다. 그는 말한다. 부부 관계도 마찬가지라고. 결혼 초기에 있었던 사소한 차이, 이를테면 성격이나 생활 습관의 미묘한 차이가 시간이 흐르면서 예측할 수 없는 불협화음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설득력 있다. 과학은 삶의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도구다. 하지만 이 설명이 전부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부부관계는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힘, 자유와 선택, 성찰과 회복의 가능성 안에 진실이 있다. 이중진자와 인간 정신은 다르다 이중진자 법칙은 자연의 움직임을 정교하게 묘사한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 법칙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물리적 세계는 인과율에 따라 움직인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한 반응 기계가 아니다. 우리는 생각할 수 있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으며,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인간 정신은 자연을 넘어선다. 부부관계 또한 그렇다. 두 사람은 본능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의지로 살아간다. 자연적 필연성으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다가가기로 ‘결정’할 수 있는 존재다. 남자는 페르소나로, 여자는 모성성으로 시작한다 결혼 초기를 되돌아보면, 남자는 사회적 가면을 쓰고 관계를 시작한다. 이 페르소나는 남성성의 상징이고, 사회적 성취와 책임, 리더십으로 표현된다. 반면 여자는 모성성을 중심으로 관계를 시작한다. 돌보고, 배려하며,...

욕이 없는 사회는 자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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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라는 언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욕은 흔히 무례하거나 품위 없는 언어로 인식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욕은 억압된 감정이 외부로 분출되는 자연스러운 통로이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억압이 더 심해지고, 억압은 결국 내면의 불안과 심리적 경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욕이 많은 나라, 일본은 욕이 거의 없는 나라 한국 사회에는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욕이 존재합니다. 이는 한국의 관계망이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한 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 표현의 방식도 다양하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일본은 대표적인 욕이 ‘바카야로(ばかやろう)’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억양이나 표정, 상황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언어적 표현의 폭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억압적인 문화 구조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억압과 자율성은 반비례 관계입니다 욕이 하나뿐인 사회는 억압이 많다는 뜻이며, 거꾸로 억압이 많다는 것은 표현할 언어적 도구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자율성은 자랄 수 없습니다. 자율은 억압이 제거되고,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환경에서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욕이 없는 사회에는 자율도 없다.” 이 말은 단순히 욕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와 자유가 없으면 개인은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셀프(Self)의 문화적 차이: 한국, 일본, 북한 이 욕의 문화는 결국 ‘셀프’의 구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에 고유한 ‘셀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한 사람, 즉 김정은만이 ‘셀프’로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그를 ‘존엄’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의 이 수령 중심 사상은 일본의 천황제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황장엽이 일본에 머물며 이를 연구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 관계 성숙의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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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성과 성숙의 시대를 향하여 –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살다 보면 어떤 이야기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tvN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그랬습니다. 작은 제주 마을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까지. 가난과 억압, 슬픔을 겪어낸 한 가족의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거, 우리 할머니 얘기야?” “우리 엄마 얘기 같아…” 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요.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그 고통만 보여준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아픔을 견디며 피어난 인간의 깊이,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 — 잊고 지냈던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린 다 알고 있어요. 한국은 한때 정말 가난한 나라였다는 걸. 전쟁은 우리 땅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들었죠. 그래도 놀랍게도 이 나라는 회복해냈어요. 경제 발전, 민주화, K-컬처의 세계화까지.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 성장 속에, 진짜 인간다운 성숙도 함께 있었을까?’ 겉으론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함께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질문 앞에서, <폭싹 속았수다> 속 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너진 집 앞에서 흙벽을 다시 바르던 엄마.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 그리고 긴 침묵을 지나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회복해 가는 딸. 그 중심에는 언제나 '존중받는 여성성’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엔 정말 인상 깊은 남편 캐릭터가 등장해요. 바로 ‘양관식’. 말도 많지 않고, 감정 표현도 서툰 평범한 남자처럼 보이지만, 그는 아내를 지배하지 않아요. 대신 그녀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옆을 지켜줍니다. 아내가 울 수 있도록,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침묵으로 감싸주는 울타리가 되어주죠. ...

남자와 여자, 감정의 갭과 부부싸움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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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특히 남녀 사이에서 더 깊게 다가온다. 서로의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그것을 배워가는 과정은 끝없는 시행착오로 가득하다. 어떤 남자는 여자 친구가 건강검진을 받은 후 뒤집어진 상황을 경험했다. 그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자 친구는 그가 너무 무관심하다고 느꼈다. 그 남자는 어쩌면 자신이 상황 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고민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오해 이상의 문제를 보여준다. 남자는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지만, 여자의 문제는 감정에 있었다. 남자와 여자가 평생 싸우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남자는 논리적으로 상황을 분석하려 하고, 여자는 감정으로 상황을 표현한다. 남자는 왜 여자가 갑자기 변덕스럽게 행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여자는 그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려 한다. 여자가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때, 이는 그 남자에게 아직 기대할 것이 남아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남자가 그 기대를 이해하지 못하면, 여자는 결국 포기하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여자의 감정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자는 자신의 논리적 판단을 내려놓고, 여자의 감정에 맞춰 주파수를 조절해야 한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가 여자의 감정에 공감을 표하고, 그 순간 그녀의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여자가 아무 감정도 표현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것이 오히려 위험하다. 여자가 남자에게 포기하지 않고 기대하고 있기에 그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만약 여자가 남자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끼면, 그녀는 감정을 숨기고 무심해질 것이다. 부부 관계에서도 이 원칙은 그대로 적용된다. 싸움을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연대감이 형성된다. 싸움이 없는 관계는 안정적일 수 있지만, 깊이가 없을 수 ...

아기는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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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 뱃속에서, 아기는 벌써 다 듣고 있다. 엄마의 말, 아빠의 대화, 심장 박동과 숨결 속에서 세상을 배운다. 소리 없는 공간 속, 아기는 어머니의 감정을 읽고, 그 변화에 반응하며, 첫 교감을 시작한다. 뱃속에서 어머니와의 깊은 연결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자궁 안에서 아기는  어머니의 목소리, 심장 박동, 호흡, 감정 상태까지도 느끼고 반응한다.  아기는 어머니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평온한 상태일 때  그 감정적 변화를 감지한다. 세상에 나왔을 때, 어머니의 목소리와 감정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된다. 아기는 말이 아닌 감정을 먼저 느낀다. 엄마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따뜻함을, 긴장된 말투 속에 불안을 느낀다. 신체의 언어로 말하는 아기, 울음 속에 담긴 감정의 파도, 엄마의 손길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 아기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어가 아닌 몸과 감정으로 세상을 배워간다. 아기는 언어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어머니의 말투, 억양, 표정, 몸짓 등 비언어적 신호를 통해  감정과 의도를 느낄 수 있다. 어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할 때  아기는 안전하고 사랑받는 느낌을 받지만,  어머니가 긴장하거나 화가 난 상태에서는 그 것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불안감을 느낀다. 이처럼 아기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전에,  그 말에 담긴 감정적, 정서적 맥락을 먼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아기는 기본적인 감각을 통해 세상을 탐구하고 이해한다.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을 통해 주변 환경을 느끼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에 대한 초기 개념을 형성해 나간다. 어머니의 얼굴을 인식하고, 목소리를 통해 안정을 찾으며,  피부에 닿는 감촉을 통해 연결감을 느낀다.  이러한 감각적 경험들이 아기의 인지 발달과 감정 발달에 기초를 제공한다. 결국, 아기는 어머니와의 긴밀한 정서적 연결을 통해  세상을 처음 인식하게 되고...

결혼은 부모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독립적인 결혼의 선포: 어머니와의 거리두기와 새로운 출발 결혼은 두 사람의 사랑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가정의 출발이다. 하지만 가끔은 이 출발이 단순히 두 사람의 선택에서 끝나지 않고, 가족과의 관계, 특히 부모와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을 수반하기도 한다. 특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이 문제는 더욱 민감할 수 있다. 나는 여친이 있다는 사실을 아직 어머니에게 알리지 못했다. 우리 집안이 가톨릭인 반면, 여친은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이다. 이 종교적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결혼을 둘러싼 근본적인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의논이 아닌 선포: 나의 결정에 대한 확고한 자세 내가 이 문제를 어머니와 의논 하는 것보다는 선포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논의 구도에 들어가면, 마치 내 결정이 불확실하고 논의의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선포하는 것은 나의 결정이 이미 확정된 것이며, 이를 변경할 수 없음을 알리는 것이다. 이는 어머니에게 내가 성인으로서 내린 결정을 존중해 달라는 요구이자, 더 이상 자녀로서 어머니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 후에도 계속해서 부모와 상의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결혼 생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특히 아내가 남편의 부모와 상의하는 일에 자꾸 개입하게 된다면,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과중해지고 심리적 스트레스를 느낄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 을 잃고, 시댁의 요구와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아내는 자아를 상실할 수 있으며, 결혼 생활의 갈등이 깊어질 수 있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의 탈피와 주체적 사고의 중요성 나는 스스로를 동료들보다 보수적인 사람으로 인정한다. 특히 어머니에 대한 생각과 의무감이 깊어, 어머니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을 한다. 하지만 내가 지나치게 어머니의 의견에 맞추다 보면, 결국 내 여자 친구 역시 어머니에게 맞...

외로움이란?(3) 여성성의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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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은 여성성의 성격   외면당한 외로움은 마치 내 안에 깊숙이 자리 잡은 여성성의 성격을 지닌 것처럼 느껴지며, 이는 내 가슴을 후벼 파며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 외로움은 단순히 사람과의 단절에서 오는 고립감을 넘어, 나 자신과의 단절에서 비롯된 고독함으로 다가옵니다. 외로움이 사무치기 시작하면, 그것은 단지 마음 한구석에 머물지 않고, 전신을 휘 감으며 내면의 고통을 증폭시킵니다.  이 고통은 마치 비어있는 공간을 채우고자 하는 끝없는 허기와 같습니다.  이는 결국 정신적인 허기짐으로 이어져, 아무리 무언가를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느끼게 만듭니다. 이때 외로움은 단순한 감정 상태가 아닌, 나를 지배하는 강력한 힘으로 변모합니다.  그 힘은 나를 삶의 밑바닥으로 끌어내려, 내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는 듯이 나를 압도합니다.  그러면서도 외로움은 나의 가장 깊은 곳, 마음의 심연으로 나를 인도하여 내가 얼마나 고립되어 있는지를, 그리고 나의 '존재' 자체가 얼마나 황폐해졌는지를 목격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다시 마주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연약하고, 불완전하며, 외부의 인정과 사랑에 의지해왔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는 나를 더욱 고독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외로움은 비록 나를 고통 속으로 밀어 넣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강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외로움은 여성성의 상징처럼, 나에게 끊임없이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라고 속삭입니다 .   그리고 그 속삭임은 때로는 아프지만, 그 아픔 속에서 나는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그로 인해 조금 더 성장할 수 있습니다.  외로움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비록 고통스럽지만 소중한 경험임을 깨닫게 됩니다. 헨리 나웬이 말하는 외로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