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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 없는 사회는 자율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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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이라는 언어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욕은 흔히 무례하거나 품위 없는 언어로 인식되곤 합니다. 그러나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욕은 억압된 감정이 외부로 분출되는 자연스러운 통로이기도 합니다. 감정 표현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억압이 더 심해지고, 억압은 결국 내면의 불안과 심리적 경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한국은 욕이 많은 나라, 일본은 욕이 거의 없는 나라 한국 사회에는 수십 가지가 넘는 다양한 욕이 존재합니다. 이는 한국의 관계망이 복잡하고 다차원적이라는 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다양한 욕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감정 표현의 방식도 다양하다는 뜻이 됩니다. 반면 일본은 대표적인 욕이 ‘바카야로(ばかやろう)’ 하나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억양이나 표정, 상황에 따라 의미가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지만, 언어적 표현의 폭은 매우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억압적인 문화 구조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억압과 자율성은 반비례 관계입니다 욕이 하나뿐인 사회는 억압이 많다는 뜻이며, 거꾸로 억압이 많다는 것은 표현할 언어적 도구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감정을 표현할 수 없을 때, 자율성은 자랄 수 없습니다. 자율은 억압이 제거되고,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환경에서만 발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합니다. “욕이 없는 사회에는 자율도 없다.” 이 말은 단순히 욕이 많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통로와 자유가 없으면 개인은 자율적 주체로 성장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셀프(Self)의 문화적 차이: 한국, 일본, 북한 이 욕의 문화는 결국 ‘셀프’의 구조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각자의 내면에 고유한 ‘셀프’를 지니고 있습니다. 반면 북한은 한 사람, 즉 김정은만이 ‘셀프’로 존재하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그를 ‘존엄’이라고 부릅니다. 북한의 이 수령 중심 사상은 일본의 천황제도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황장엽이 일본에 머물며 이를 연구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 관계 성숙의 시대를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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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성과 성숙의 시대를 향하여 –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살다 보면 어떤 이야기는, 그냥 드라마가 아니라 우리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tvN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그랬습니다. 작은 제주 마을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그리고 그 이후까지. 가난과 억압, 슬픔을 겪어낸 한 가족의 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이거, 우리 할머니 얘기야?” “우리 엄마 얘기 같아…” 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요. 하지만 이 드라마가 특별한 건, 그 고통만 보여준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아픔을 견디며 피어난 인간의 깊이,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 — 잊고 지냈던 여성성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린 다 알고 있어요. 한국은 한때 정말 가난한 나라였다는 걸. 전쟁은 우리 땅뿐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들었죠. 그래도 놀랍게도 이 나라는 회복해냈어요. 경제 발전, 민주화, K-컬처의 세계화까지. 하지만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 성장 속에, 진짜 인간다운 성숙도 함께 있었을까?’ 겉으론 많이 발전했지만,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함께 자랐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 질문 앞에서, <폭싹 속았수다> 속 가족을 떠올리게 됩니다. 무너진 집 앞에서 흙벽을 다시 바르던 엄마. 말 한마디 없이 묵묵히 가족을 지켜낸 아버지. 그리고 긴 침묵을 지나 자신의 감정을 깨닫고 회복해 가는 딸. 그 중심에는 언제나 '존중받는 여성성’이 있었습니다. 이 드라마엔 정말 인상 깊은 남편 캐릭터가 등장해요. 바로 ‘양관식’. 말도 많지 않고, 감정 표현도 서툰 평범한 남자처럼 보이지만, 그는 아내를 지배하지 않아요. 대신 그녀가 자기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용히 옆을 지켜줍니다. 아내가 울 수 있도록, 감정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도록, 침묵으로 감싸주는 울타리가 되어주죠. ...